Thursday, 20 April 2017 06:26

워싱턴중앙일보 - 예수 향기 남기고 떠난 고 이원상 목사

예수 향기 남기고 떠난 고 이원상 목사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겸손과 기도의 목회 인생 
생애 마지막 설교서도 전도·선교 강조

워싱턴중앙일보 이원상목사님 기사

5일 소천한 고 이원상 목사는 1937년 중국 만주 산성진에서 부친 이성봉 장로, 모친 윤봉선 성도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1945년 부친 이성봉 장로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북한 만포진으로 이주했지만, 북한에서도 신앙생활이 어려워 2년 뒤인 1947년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 청량리로 내려왔다. 이 목사는 이곳에서 전농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다. 

1949년 가족들을 따라 경상북도 경산으로 옮겨간 이 목사는 경산중학교와 대구상고, 대구 계명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505병기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1965년 경북대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목사는 1966년 약사인 김영자 사모와 결혼했다. 훗날 이 목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이 김영자 사모라고 고백한다. 이 목사는 지난 2003년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내는 목사인 나보다 교인 가정 하나 하나를 더 깊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왔다”며 “25년간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약사로 근무하면서도 교회일에 소홀함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잠이 부족할 텐데도 낮에 내가 심방갈 때는 항상 동행하는 등 교회 일에 빠짐없이 동참해줬다. 두 자녀도 아내가 책임지고 양육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1968년 미국으로 와 댈러스 신학교에 입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이 목사는 “그 때는 미국에 오래 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댈러스에 한인들이 300명 정도 있었는데 점점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도 한인목회자와 한인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72년 댈러스 신학교를 졸업한 이 목사는 1973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구약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77년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청빙을 받게된다. 이 목사는 1977년 12월 전도사 신분으로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교역자로 부임했다. 당시 교인은 14가정, 30명이었다. 

목회 초기에 어려움이 많아 신학을 공부했던 댈러스로 옮겨갈 생각을 하고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던 이 목사는 “교인들의 만류로 교회에 계속 남게됐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무사히 목회를 마치게 됐다. 나의 목회인생을 정리한 신앙고백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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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on Friday, 21 April 2017 11:12